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
올레는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사물을 통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혼자 걸을 때는 혼자만의 멋으로, 둘이 걸을 때는 둘의 멋으로, 셋이 걸을 때는 셋의 멋스러움으로 순례하다 보면, 돌담에서 느끼는 이 땅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머언 말씀부터, 해변에서 만나지는 머흐러진 바람 소리와 벌판에서 수런거리는 풀잎 구르는 전설까지, 오름마다 봉화 올리는 낮달의 미소를 기억하는 올레 삼촌의 뜨거운 이야기가 퐁낭 그늘케가 되어, 순례의 걸음을 잠시 쉬어가게 한다.올레는 이처럼 사물에 현혹되어 신기루를 따르는 무리를 경고하고, 물질에 오염된 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며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길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걷다 보면 닿고, 멈춰 서면 그만큼 거리에 서 있는 신기루 같은 올레가 바로 제주올레 8코스가 아닌가.걸으면 하늘올레가 되어 하늘길이 열리고, 곳바당 기슭에 기대면 바람 한 올 없어도 노를 저어 다가오시어 바당올레로 물살 풀어가시는,“여기는 여기는 제주나돈데, 옛날 옛적 과거지사에, 탐라국으로 이름 높아 삼신산도 안개나 속에, 사시 절 명승지로다. 이 언덕 저 언덕 저 언덕 이 언덕, 한라산이나 명승지로구나.”…. 마디마디 스며 흐르며, 고븐데기마다 굽이지는 구성
제주올레 7-1코스는 신시가지 또는 신서귀포라 부르는 ‘신머들’에서 시작된다. 신머들은 ‘머들’이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머들은 땅에 박혀 있으나 지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암반을 의미하고, 노출이 적고 지면 아래에 암반이 있으면 ‘빌레’라고 한다.신머들 남쪽은 ‘써근섬’ 해안으로 지역 일대를 ‘고상머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신서귀포에서 부터 써근섬 해안까지는 지반 자체가 머들로 대부분 이뤄져 있어 흥미롭다. 지명을 살펴보면 그 지역의 미래가 보인다. 신머들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머들은 건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지역은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