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의대 2000명 증원, 공분 유도? ‘정치 노림수’ 아니길

윤 대통령은 경호처가 강압적 행태를 반복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비판적인 목소리는 원천 차단하라는 묵시적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윤 대통령은 경호처가 강압적 행태를 반복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비판적인 목소리는 원천 차단하라는 묵시적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뇌피셜일 수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연상케한다.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1998년 조폐공사 파업을 검찰이 유도했다고 한 대검 간부의 취중 발언으로 사건은 야기됐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에 쐐기를 박기위해 검찰이 의도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훗날 나온 판결은 다소 어정쩡했으나, 당시 사회적인 파장은 엄청났다. 

검찰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사건은 최초로 특검제가 도입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해당 검찰 간부는 노동관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의정갈등의 와중에 파업유도 사건을 떠올리는 건 무엇보다 숫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숫자만 나와있다. “어떻게?”가 빠져있다. 과정이 생략됐다. 현실적으로도 2000명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정원만 늘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연 400명 증원도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렇기에 이번 의료계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2000명도 최소 규모라고 강조한다. 관계부처들도 하나같이 강경일변도다. 법무부장관은 어디에 나온 원칙인지 ‘구속수사 원칙’을 들먹였다.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싶을 정도다. 전공의들이 29일까지 복귀하면 문책하지 않겠다는게 거의 유일한 유화책이다. 

여론은 의료계 편이 아니다. 반발이 거세질수록 사회적 공분도 커지고 있다. 정부로서도 이 점을 모를리 없다. 솔직히 밑질 게 없다. 

검찰 간부의 취중 발언을 끌어다 써보겠다. 20여년 전 검찰이 파업을 유도했다면, 의대 정원 대규모 증원 방침은 극한 대립과 국민적 공분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 의료계 반발이 밥그릇 지키기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의 움직임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마없어 총선이다. 강대강 국면이지만, ‘누군가’는 절묘한 타이밍에 적당한 선에서 극적인 타협을 이뤄낼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화된다면, 그가 진짜 위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이른 것 같다. 환자들의 고통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정부는 상대방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일 생각이 없는 듯 하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드러난 세 번째 입틀막 사건을 보라. 

당사자는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 의사회장이다. 대통령이 주재한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 참석하려다 경호원들에게 입틀막 체포를 당했다. 그것도 행사장 밖이었다. 퇴거 불응 혐의로 입건된 임 회장은 경찰서에서 9시간 가량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쯤 되면 경호처가 아니라 폭행처다. 입틀막 정권의 독선과 아집에 민심은 이미 질식 직전이다.”

민주당의 반응이 아니다. 한때는 정부여당과 같은 편이었던 개혁신당 허은아 수석대변인의 일갈(2월22일 논평)이다. 

임 회장의 이력을 보면, 경호처의 대통령 심기경호가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알 수 있다. 

그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 피습 당시 헬기 이송이 특혜라며 이 대표를 형사고발했던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토론회에서 문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며 단상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대표적인 보수인사인 셈이다. 

최근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틀막 당시 상황에 대해 “한없이 참담했다”며 “현장의 동료들도 ‘군부독재가 다시 도래한 것 아닌지’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임 회장의 공격 대상이었던 민주당이 이제는 오히려 임 회장을 위로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게됐다.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3연속 국민 입틀막 사건은 윤 대통령의 용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윤 대통령은 경호처가 강압적 행태를 반복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비판적인 목소리는 원천 차단하라는 묵시적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다시 임 회장의 말이다. 

“정부가 의사들과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은)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나라를 망치는 자들을 다 내쳐야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의 사례에선 듣기 좋은 보고만 늘어놓은 자들이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했을 수 있다.  

이게 다일까. <벌거벗은 임금님>의 ‘보이지 않는 옷’은 거짓 보고를 일삼은 신하들 보다는 애초 재단사에게 속아 넘어간 무능하고 사치스러운 임금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임금님은 아무것도 안입으셨네요.”

직설을 던진 동화 속 꼬마처럼, 누가 임금님 ‘나체 행차’의 진실을 일깨워줄 수 있을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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