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공공자원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사유화하는 시대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를 대표하는 생태계 보고인 곶자왈 수난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곶자왈을 파헤친 대표적인 개발사업 가운데 하나는 제주영어교육도시다.

2006년부터 시작한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은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379만597㎡ 부지에 총사업비 1조9256억원을 들여 추진되고 있다. 지금은 1단계 사업으로 계획한 국제학교 7곳 중 4곳이 개교해 운영 중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는 대규모 곶자왈에 들어서는 개발사업이어서 시작부터 환경파괴 우려가 컸다. 특히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에는 도유지 곶자왈이 무상으로 제공됐다. 이제는 그 곶자왈이 외국 자본에 헐값에 팔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지난 13일 자회사인 (주)제인스가 운영해오던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NLCS jeju)’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로 영국계 글로벌 학교 운영 그룹인 코그니타 홀딩스(Cognita Holdings Limited)를 선정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영어교육도시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영어교육도시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번 매각 추진은 지난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권고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민간 부분의 성장으로 민간과 경합하는 기능을 적극적으로 축소하라’고 제시했다. 어렵게 들리나 그냥 공공기관이 운영하던 사업을 민간으로 이전하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첫 번째 민간이전 대상으로 NLCS jeju를 선정했다. 

2011년 9월 문을 연 NLCS jeju는 영어교육도시 가운데 첫 번째 국제학교다. 이번 매각되는 NLCS jeju에는 무상양여한 도유지 곶자왈 지대가 포함돼 있다. 

제주도는 매각 대상 국제학교 부지 10만4407㎡ 가운데 도가 양여한 땅은 73.5%인 7만6791㎡이며 조성원가 기준 130여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을 위해 2009년 제주도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무상양여한 도유지는 이번 매각 대상을 포함해 23필지, 208만8336㎡에 이른다.

이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추진하는 매각이 이뤄질 경우 당초 제주도가 영어교육도시 개발을 목적으로 무상양여한 도유지 곶자왈도 결국 외국자본에 팔려나감을 뜻한다.

도유지를 민간에 넘기는 원죄를 안고 있는 제주도는 뒤늦게 나서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매각에 따른 사전협의 절차도 하지 않았으며 헐값 매각으로 도민 이익이 민간에 넘어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양보 제주도 문화체육교육국장은 15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사전협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데 강한 유감을 나타내며 헐값 매각 반대와 학교 인접 공공용지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했다. 

제주특별법 222조에 따르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무상양여 받은 도유지를 매각할 때는 도지사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협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매각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정평가액이 아닌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매각하면서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도시개발법 등에 따라 학교부지를 조성원가에 공급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조성원가로 우선협상대상자와 부지매각 협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영어교육도시 학교부지 조성원가가 감정평가액 기준 10% 안팎에 불과해 1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본다며 반대하고 있다.

학교부지 민간매각 시 조성원가 기준 공급은 의무사항이 아니며 합리적 범위 내에서 감정평가액 이상으로도 정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결과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국제학교 매각 논란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나서서 공유재산을 민간기업에 넘기는 공공자산 사유화 사례다. 도민 공유자산인 곶자왈이 개발사업을 거치며 외국자본 소유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도유지 관리를 맡아있는 제주도와 이를 무상으로 받아 사업을 추진해온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학교를 매각하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도 나름 이유는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 공기업이다. 경험과 능력있는 외국 학교법인을 유치해 영어교육도시를 활성화하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이번 매각 과정과 내용은 도민들이 받아들이기엔 아쉬움이 크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으로 도유지인 곶자왈이 파괴되고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팔려나간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도민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제주영어교육도시는 시작부터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왔다.

외국 유학 수요를 국내로 돌리고 우수한 교육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와 제주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제주에 비싼 귀족학교가 들어서며 교육 불평등이 커진다는 우려와 곶자왈을 파괴하는 반환경 개발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컸다.

영어교육도시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는 모두 현실이 됐다.

영어교육도시에는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려는 이른바 대치맘들이 줄섰다. 영어교육도시를 중심으로 2차 개발 바람도 일어 제주 부동산 가격을 한껏 올려놓았다. 도민 체감을 떠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연간 5000만원에 이르는 학비는 귀족학교라는 인식을 주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제주에서도 뛰어난 생태계를 자랑하던 곶자왈 수십만㎡가 사라졌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영어교육도시는 진행형이다. 논란도 마찬가지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해외 유학 수요를 제주에 유치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제주도 세수 확대 등 성과를 내세운다. 나아가 2단계 사업을 비롯한 추가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br>

하지만 한편에서는 제주판 귀족학교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2단계 개발로 또다시 대규모 곶자왈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도유지 곶자왈은 사적 소유물이 된다.

모두의 삶에 필요한 공공자원마저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사유화하는 시대다. 정부마저 부추긴다.

뒤늦은 영어교육도시 도유지 매각 논란을 보며 앞으로 올 곶자왈 파괴와 사유화가 더 걱정스럽다. / 김효철 논설위원(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