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59) 우리는 그곳을 수평선이라 한다 -1
우리는 그곳을 수평선이라 한다 -1
소주잔 눈금의 높이로 밤새는 줄 모르던 그때
어둠의 허용치 밖에
섬 하나가 자리해 있다
까맣게 잊고 살아온 나의 반쪽 그 까만 섬에
아리아리 글썽여오는 금단의 불빛들
누군가에 갇혀보고 싶어서
누군가를 가둬두고 싶어서
끝끝내 선을 섬기다 선 밖으로 버려진 것들
세상천지에 무슨 놈의 견우와 직녀가 저리도 많담!
무엇이나 쏟아낼 수 있고, 무엇이나 참아낼 수 있는 곳
난파된 꿈의 조각들이
바닷새 형상으로 날아오르다 멈칫, 내가 어느새
한 점 불빛으로 글썽이는 곳
우리는 그곳을 수평선이라 한다
/ 2018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침묵을 언어의 한 수단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평선입니다. 입으로 말하고, 몸으로 말하고 눈빛으로 말하고, 뒷모습으로 말하는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언어로, 사람을 꼼짝 없이 가둬놓는 것 또한 수평선이랍니다.
내가 어렸을 때 바다는 수영과 낚시 보말잡기로 함께 자랐습니다. 그리고 한창나이 청년기에는 39개월의 함상근무를 통해서, 나를 더욱 강하게 했습니다. 그 후 삶과 문학의 고해苦海를 항진하면서, 바다는 어느새 내 삶의 바탕화면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평선은 어느새 나의 절망이며 감옥이었던 것, 그 한계선을 넘기 위해 제주를 떠나 한반도 남쪽 끝 섬, 당사도 민박집에 고단한 배낭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수평선은, 더욱 간절한 표정으로 다도해 섬 사이로 짤막짤막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밤마다 간절한 눈길을 보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추자해역 바위섬 꼭대기 등댓불이, 존댓말 형식의 짧은 시조 한 편을 나에게 타전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책 좋은 스승은
가둬두지 않습니다
좋은 길 좋은 율법은
가로막지 않습니다
곳곳에 섬을 얹히고
등댓불을
비출
…
뿐
「수평선을 바라보며 2018」 전문
시란 무엇인가? 이처럼 단순한 질문 앞에 사람들의 생각이나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를 분해하고 분석하다 보면 자칫 쓸데없는 언어 부스러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한 잔의 와인처럼 음미하다 보면, 비로소 시야말로 논리나 과학이 아닌,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육되는 감정의 추출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시조가 지닌 정형의 가락을 통해, 독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감정의 ‘결’을 자극하는 것, 그런 시 한 편 쓰려고, 주인 잘못 만난 주름투성이 나의 손가락이 오늘도 고생 또 고생이랍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