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54) 4.3이 나에게 건넨 말

어르신 한 명이 돌아가시는 것은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얼마 전 단톡방 부고 소식에 올라온 글이다. 어르신 한 분이 도서관 한 채와 같다니….

제주에서는 4.3이라 불리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3만여 명의 도민이 목숨을 잃었다. 도서관 3만 채에 담겨 있던 책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전국에 국립도서관, 공공도서관, 교정시설도서관, 작은도서관, 장애인도서관, 전문도서관,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등 2만여 개의 도서관이 현재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국 모든 도서관이 불과 몇 년 만에 전부 사라진 사건인 셈이다. 어쩌면 4.3을 기억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역사적 기록 너머에 자리한 그 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

올해 추념식 슬로건으로 선정된 문구다. 유난히 추웠을 그때의 제주 봄바람을 기억하며 제주4.3의 정신을 일깨우고, 평화의 씨가 날아 곳곳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해져 슬픈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올해 4.3추념식 대통령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처음으로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추념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은 지금의 정치를 바꿀 힘이 우리 아이들에게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제주4.3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면 한국 사회 전체에서 4.3교육의 방향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올해 추념식을 계기로 평화의 씨가 전국 시도교육청으로 날아가 제주4.3이 부르짖는 평화와 인권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길 바라본다. 

/ 사진=알라딘
/ 사진=알라딘

지난해 10월 출판된 한상희 선생님의 ‘4.3이 나에게 건넨 말’(다봄)은 저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연을 듣고 생겨난 풀리지 않은 의문을 찾아 지금까지 떠나온 긴 여정을 소개하는 책이다. 4.3속에 살아온 이들의 삶을 잘 녹여내고 있다. 

그는 “4.3의 역사를 알고 나서부터는 당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 갔다고 한다. “초토화작전으로 마을이 깡그리 불타고 부모가 희생되는 바람에 홀로 남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고사리같이 어린 손으로 다시 집을 짓고 제주공동체를 복원해 냈을지” 물음을 찾아 떠난 그는 제주 역사의 질문을 자신의 가족 이야기로 솜씨 좋게 옮겨온다. 

당시 “8살 꼬마였던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8살 꼬마는 물질을 해 생활하며 8남매를 낳고, 꼬마의 남동생은 목수가 되어 7남매를 키웠다. 4.3으로 아버지를 여윈 그의 어머니처럼 그의 아빠는 휴가 나온 군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무면허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사연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분노와 아픔으로 눈물이 흐른다. 책 제목처럼 4.3의 이야기가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지금 이야기로 건네 온다.

해방 전후 제주사회의 풍경부터 4.3의 시대적 배경까지 4.3을 이해하기 쉽게 교육현장의 경험을 녹여 이야기로 풀어간다. 그러면서도 “중산간 마을의 집들이 모두 불에 타 버렸는데,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지금 제주도의 마을은 너무나 예쁜데, 잿더미가 된 집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을까? 원망과 복수심이 컸을 텐데, 어떻게 제주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었을까?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10살 안팎의 꼬마들이 도대체 무엇을 먹고살았던 것일까?”라는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궁금증이 조금씩 풀린다. 

하지만, 그는 모든 답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3만 명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그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딸이고 아들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3만 개의 도서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 용기가 무엇인지, 4.3이 우리에게 전해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함께 읽고 고민해보길 권한다.

아마 그 속엔 우리의 현재를 돌아볼 나침반이 들어있을 것이다. 지난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제주지역에선 젠더폭력 없는 제주를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들은 지난해 제주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해결과 디지털 성폭력을 예방하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동 민원을 제주도교육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에선 뚜렷한 답변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상에서 인권과 평화가 자리 잡아나가는 과정이 4.3평화인권 교육일 것이다. 4.3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